“취임식보다가 눈을 의심했죠” 김대중

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집권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취임 당시 74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 됐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의외의 글로벌 스타가 참석해 화제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마이클 잭슨이 참석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부시 대통령의 초청을 거절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모든 인사를 접고 추종자 5명과 함께 전세기를 타고 방한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7년 11월 마이클 잭슨이 무주리조트 투자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아이들 관련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마이클 잭슨은 당시 쌍방울 소유였던 무주리조트 유치원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투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평화를 위해 일본, 북한, 미국과 관계를 맺는 일을 잘했다.


세계평화를 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력에 감명을 받은 마이클 잭슨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취임식에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두 사람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서울사무소에서 만나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대화하며 공감대를 이뤘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마이클 잭슨은 취임식 참석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실제로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갔다.


마이클 잭슨은 세계 평화에 대한 관심이 커서 “통일되면 다시 와서 공연하겠다”며 올해의 마지막 해외 순회 공연을 서울에서 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9년 50세의 나이로 미국 자택에서 숨을 거두며 다시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의 사인이 급심정지로 밝혀졌다.

이후 심정지 원인은 주치의가 처방한 진정제와 프로포폴 급성 중독임이 밝혀져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 형들과 함께 더 잭슨 파이브의 멤버로 데뷔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Thriller’, ‘Billie Jean’ 등 다양한 곡과 뛰어난 춤 실력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등장은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단순한 음악을 넘어 20세기 대중문화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흑인 남성으로서 사회적 문제인 인종차별을 완화한 문화예술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했다.

미국 흑인 최초로 음악에 앞장서며 음악사에 전례 없는 선례를 남겼다.


이것은 실제로 많은 흑인 가수들에게 음악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주었고,

이후 세계 평화를 위해 운동한 사회운동가로 떠올랐고,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엔터테이너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성추문 루머로 언론의 곤경에 빠지며 그를 미치광이 취급하는 분위기가 감돈다.

언론매체 판매는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백반증과 무고에 따른 추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2009년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대중음악의 전설로 기억하고 있다.

세계평화와 좋은 음악을 위한 그의 행보를 잊지 않겠습니다.